“공공인가요 민간인가요”
몇 년 전 저희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등을 교체하면서 관련 업체에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습니다. 공공구매냐 아니냐는 것입니다. 공공일 경우 가격이 거의 두배였습니다. 당연히 저희는 공공기관도 아닌데다가 세금으로 구매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저렴한 민간가격으로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공공조달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모두 아는 비밀입니다.
물품 용역 공사는 모두 조달청에서 계약을 합니다. 최근 발표된 조달청의 <25년 물품 용역 공사 발주계획>자료를 보면 2025년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조달은 10만 5819건에 70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물론 이 자료는 상반기에 조달을 독려하여 경기회복을 가속화하는 마중물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하지만 올해 정부예산은 673조 원입니다.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출을 합해야 하겠지만 공공조달은 정부예산의 10%가 넘는 거대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조달청의 업무는 물품구매 공급 및 공사 계약만이 아닙니다. 주요원자재 비축사업, 정부 물품 및 국유재산관리, 나라장터를 관리합니다. 한마디로 방대한 업무입니다. 이중 공공전자조달을 하는 “나라장터” 플랫폼에는 6만 9천여 공공기관과 56만 9천여 조달업체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조달청에는 1,118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않는 한 거대한 조달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중가격제
최근 조달청은 이중가격제에 대한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가격 위반을 집중 단속했다는 내용입니다.<조달청,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가격 위반’ 집중 단속> 또한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등록된 ‘다수공급자계약’(이하 MAS) 계약 물품에 대한 시중가격 모니터링을 확대·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수공급자계약(Multiple Award Schedule)은 품질·성능·효율 등이 동등하거나 유사한 물품에 대해 여러 업체와 단가계약을 체결하여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등록하면, 수요기관이 별도의 계약절차 없이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서 직접 해당 물품을 선택하여 구매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우대가격 유지의무 때문입니다. 우대가격 유지의무는 MAS 가격이 ‘가장 우대된 가격’이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MAS 계약업체는 조달계약단가를 시장공급가격 이하로 유지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시장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점검 대상은 주로 컴퓨터, 복사기, 공기청정기, 전자칠판 등 전자, 가전제품으로 민간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격 노출 빈도가 높은 물품입니다.
2024년 문제가 발견된 13개 품명 35개 규격에 대한 점검으로 가격을 낮추게 한 것이 23.7억원 가량이랍니다. 조달청은 2025년에는 7,633개에 대한 점검을 진행해 “반칙가격”을 없에 조달가격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계약 10만 건에 참여업체만 56만개인 현실에서 점검 규모는 매우 적습니다. 조달청의 인력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제보에 의존하거나 문제가 드러난 품목을 중심으로 점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공개하고 노력하는 조달청의 자세는 만시지탄이지만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점의 비용
저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화시대에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대국인 한국에서 공공조달을 한 곳에서 독점하는 것이 맞냐는 것입니다. 이중가격제의 현실은 독점이라는 구조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요. 뿐만 아니라 공공조달을 해 본 사람들은 특정업체를 사실상 지정해서 하는 계약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달청은 플랫폼을 제공할 뿐 계약의 공정성 등을 확인할 의지도 능력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 오래되었지만 나라살림연구소는 2015~2019년 조달청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분석을 통해 조달청 독점의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습니다. 연구소 지적 이전에 국민권익위원회, 국정조사, 감사원감사를 통해 동일 제품을 시중 가격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장기적 독점은 부패의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업무를 맡은 곳의 부패가 아니더라도 그곳을 이용하는 기관들이 면피하고 부패소지를 가진 계약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부패는 미뤄놓더라도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이중가격시장은 재정의 비효율과 낭비를 조장하고 장려하는 시스템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2020년 7월에 민간플랫폼 사업자를 연방 조달청 시장유통에 참여시켰습니다. 우선 아마존 등 3개사 입니다. 한국 역시 시중 유통되는 상용품과 품질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가구, 단순 사무용품, 컴퓨터 등 물품을 민간 유통 플랫폼 시장에 공개해 준독점적 성격을 해소하고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이미 2020년에는 경기도와 서대문구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독자적인 조달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중 정보화시대입니다. 부패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법적으로 독점을 보장해주는 것은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는 정보를 무시하는 시대착오적인 행정일 수 있습니다. 불만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레임으로 전환을 해야 합니다. K-행정이 보여주어야 할 혁신입니다. <저작권자 ⓒ 사회적경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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