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기재부의 쪽지 예산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2/09/25 [12:02]

[정창수 칼럼] 기재부의 쪽지 예산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입력 : 2022/09/25 [12:02]

‘쪽지예산’이라는 용어가 있다.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할때 마지막 단계인 예산안 계수조정 과정에서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쪽지에 적어 건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행태는 정부에서 제출한 예산안에 대한 심의과정을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이미 여야는 기재부와 당정협의를 통해 예산안 편성과정에 최소한의 의견제시 절차를 두어왔다. 그리고 의회에 제출된 예산안에 대해 국회 예결위와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보고서가 각각 제출된다. 상임위에서도 분석보고서가 제출되어 상임위 예산심사에 활용된다. 그리고 예결위에서도 심의를 거치고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감액과 증액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다. 

 

많은 절차를 거치면서 진행된 예산심의에 갑자기 끼어든 쪽지 예산사업은 심의절차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한 행태로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쪽지예산은 좁은 의미로는 심의 절차를 무시한 행위를 이야기해 왔다. 다행히 요즘은 막판에 끼어든 쪽지예산은 거의 없어졌다. 최소한 상임위에서라도 증액의견을 올리기 때문이다.

 

요즘 쪽지 예산과 카톡 예산은 이미 의견이 제시된 예산을 확정시키려는 추가적인 노력 정도로 그 의미가 완화됐다. 그래서 요즘에는 쪽지라는 언급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주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실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 설명자료에 <외빈접견과 각종행사지원>으로 878억의 예산(2년분)이 편성된 것을 찾아내 발표한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 철회를 지시해 일단락됐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견됐다.

 

우선 정부의 예산 심의과정을 무력화시켰다. 1월 각 부처가 기재부에 앞으로 5년간의 예산지출계획인 <중기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재정전략회의>를 거쳐 3월에 각 부처에 <예산안편성지침>을 통보한다. 각 부처는 이를 토대로 5월까지 <예산요구서>를 작성하여 기재부에 제출한다. 이 내용을 가지고 3개월간 기재부와 부처가 협의한 후 9월 3일까지 최종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이번 영빈관 예산은 8월에서야 기재부에 제출됐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직전이다. 따라서 8개월에 걸친 예산안 편성과정이 무력화된 것이다. 

 

예산이 결정되는 것은 행정논리와 정치논리가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행정의 힘이 너무도 강하여 정치논리는 변죽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행정의 보수성 때문에 연간 신규사업이 1%밖에 되지 않고, 국회의 예산수정률도 요즘에야 겨우 2%가 될 정도로 미미하다. 이래서는 예산이 혁신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다만 행정의 보수성은 안정성의 측면도 있었다. 8개월에 걸친 편성과정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쪽지예산”이 끼어든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비서실의 예산이 아니라 기재부의 국유재산관리기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행정의 안정성도 믿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것일까? 몰랐다면 큰 문제이고, 알면서도 끼워 넣기를 했다면 더 큰 문제다. 이 사업의 타당성은 판단하지 않겠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과정의 신중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커다란 걱정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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