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3.4조 유류세 감면, 누구를 위한 예산인가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6/04/27 [00:27]

[정창수 칼럼] 3.4조 유류세 감면, 누구를 위한 예산인가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입력 : 2026/04/27 [00:27]

이번 추경, 유류세에 3.4조 썼다

 

정부가 26조 2,000억 원 규모의 2026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고유가 대응이 핵심 명분 중 하나였다. 유류세 감면분만 교통·에너지·환경세 3조 3,658억 원 감액 경정, 쉽게 말해 3.4조 원의 세금을 안 걷겠다는 결정이다.

 

▲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

 

같은 추경에서 K-패스(대중교통 요금 환급) 지원 확대액은 877억 원이다. 유류세 감면이 K-패스의 38배다. 이 숫자 하나가 이번 글의 출발점이다.

 

 

"66%는 혜택이 없다" , 데이터가 말하는 것

 

나라살림연구소 김진욱 객원연구원이 <소득분위별 교통비 지출 현황 분석> 보고서로 이번 추경의 사업 중 하나인 유류세 사업을 분석했다.

 

2021~2025년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명확하다. 소득 1분위 가구의 66.2%는 주유비 지출이 전혀 없다. 차량이 없거나 이용하지 않는 가구다. 유류세를 아무리 내려도 이들에게 혜택은 원천적으로 0원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주유비 지출은 가파르게 늘어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유류세를 L당 28% 인하하면 소득 상위 10%는 연평균 38만 3,000원 혜택을 받는 반면 하위 10%는 1만 5,000원에 불과하다. 2018년 15% 인하 때도 상위 10%는 15만 9,000원, 하위 10%는 1만 5,000원이었다. 혜택 격차는 10배가 넘는다.

 

 

이것이 예산 귀착이다

 

이 현상을 ‘예산귀착’이라고 부른다. 재정학의 ‘조세귀착’ 개념에서 착안했다. 세금을 거두면 실제로 누가 부담하는가를 따지듯, 예산을 지원하면 그 돈이 결국 누구에게 귀착되는가를 따져야 한다.

 

유류세 인하는 “고유가로 어려운 국민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설계된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돈이 실제로는 차량을 많이 운행하는 고소득층에 귀착됨을 보여준다. 저소득층 지원이라는 명분과 실제 귀착 사이의 간극. 이것이 예산귀착 문제의 핵심이다.

 

앞서 연탄 보조금이 저소득층을 돕는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석탄회사의 구조조정을 늦추는 데 귀착된 것과 똑같은 구조다. 화물차 유가보전금 2조 원이 차주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화물주 기업들의 낮은 운임을 유지시키는데 귀착된 것과도 같은 구조다. “누구를 위한 예산인가”라는 질문 없이 설계된 예산은 의도와 다른 곳에 착지한다.

 

 

그렇다면 3.4조를 어떻게 써야 했나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유류세만 내리면 양극화를 제어하지 못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문제의식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추경은 유류세 감면 3.4조 대 K-패스 877억이라는 38배 불균형으로 편성됐다.

 

보다 효과적인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K-패스 대폭 확대다. 차량이 없는 저소득층도 버스와 지하철은 탄다. K-패스는 대중교통 이용액의 일정 비율을 환급하는 방식으로, 차량 보유 여부와 무관하게 저소득층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현재 정부도 이번 추경에서 K-패스 환급률을 최대 83%까지 한시 상향했지만, 재원 규모가 877억 원으로 너무 작다. 유류세 감면 재원의 일부만 K-패스로 전환해도 훨씬 광범위한 저소득층 지원이 가능하다.

 

둘째, 에너지바우처 확대다. 차량도 없고 대중교통도 잘 이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 독거노인, 장애인 등에게는 에너지바우처 직접 지급이 가장 효과적이다. 현재 추경에서 에너지바우처 수급자 추가 지원(1인당 5만 원)이 포함됐지만, 규모 면에서 유류세 감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셋째, 에너지 전환 투자다. 고유가 위기는 반복됩니다. 위기를 넘기는 것에만 쓰인 재정은 다음 위기에 또 소요된다. 같은 재원을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 전기차 전환 지원, 에너지 효율화에 투입하면 위기 대응과 구조 전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위기는 혁신의 기회다. 고유가 대응 예산이 화석연료 소비를 유지시키는 방향으로만 쓰이면, 에너지 전환은 계속 미뤄진다.

 

소득 1분위 가구 중 혜택을 받는 34%가 유류세 인하로 절감하는 금액은 월 880원 수준이다. 반면 K-패스 환급률 83% 상향 시 대중교통을 월 10만 원 이용하는 저소득층은 월 3만 원 추가 절감이 가능하다. 같은 고유가 대응인데, 누구에게 더 실질적인 지원인지는 명확하다.

 

 

예산귀착을 경계하는 세 가지 원칙

 

유류세 감면, 연탄 보조금, 화물차 유가보전금. 이 세 가지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교훈이 있다.

 

명분과 귀착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서민 지원’이라는 명분이 붙었다고 해서 재원이 서민에게 귀착된다는 보장은 없다.

 

지원 방식이 지원 대상보다 중요할 수 있다. 유류세 인하는 차량 보유자에게만, 연탄 보조금은 연탄 구매자에게만, 유가보전금은 결국 운임을 낮추는 방식으로 기업에게 귀착된다. 바우처·직접 지원·인프라 투자는 훨씬 선택적으로 저소득층에 귀착시킬 수 있다.

 

한시적 지원의 영구화를 경계해야 한다. 유류세 인하는 2021년 이후 사실상 상시화됐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고유가가 올 때마다 같은 역진적 지원이 반복된다.

 

3.4조 원은 작은 돈이 아니다. 그 돈이 차량을 많이 모는 고소득층에게 더 많이 귀착되고, 정작 차가 없는 저소득층의 66%는 배제된다면 이는 고유가 대응이 아니라 고유가를 빌미로 한 역진적 재정 지출이다.

 

예산은 지원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귀착되는지를 설계 단계에서 따지지 않으면, 좋은 명분의 나쁜 예산이 반복된다.

 

이번 추경 심사에서 국회가 K-패스 확대와 에너지바우처 증액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예산귀착을 의식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38배 불균형을 바로잡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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