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재정 딜레마가 아닌 재정 혁신 : 2027년 예산안 편성 지침이 열어가는 변화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6/04/12 [23:25]

[정창수 칼럼] 재정 딜레마가 아닌 재정 혁신 : 2027년 예산안 편성 지침이 열어가는 변화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입력 : 2026/04/12 [23:25]

정부가 지난 3월 30일 국무회의에서 ‘2027년 예산안 편성지침’을 의결했다. 8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내년도 예산 규모와, 사상 최초로 의무지출에 10% 감축 목표를 제시한 지출 구조조정 방향이 동시에 담긴 이 지침을 두고, 언론과 정치권은 ‘팽창’과 ‘긴축’이라는 상충된 메시지가 공존한다며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그러나 이 지침은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출 감축과 재정 확대라는 두 목표는 서로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재정의 구조적 혁신을 향한 두 개의 날개이기 때문이다.

 

 

팽창과 긴축, 그 너머의 재정 철학

 

이번 편성지침은 분명 긴장감을 담고 있다. 재량지출 15%, 의무지출 10%의 감축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AI·녹색 전환(AX·GX), 5극 3특 지방 성장 엔진, 연구개발(R&D) 등 핵심 분야에 대한 전략적 투자 확대를 명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깎으면서 늘린다’는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재정 혁신의 본질이다. 묵은 지출은 털어내고, 미래를 향한 투자는 오히려 두텁게 한다는 원칙은 단순한 재정 테크닉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무엇을 위해 돈을 쓰는가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성장률 둔화, 인구 감소, 기술 대전환이라는 삼중의 구조적 도전 앞에서, 이제는 재정이 단순한 ‘살림살이’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하는 중심축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지침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지출 구조조정은 공공부문 개혁의 트리거

 

이번 지침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지출 구조조정의 방식과 범위다. 정부는 재량지출뿐 아니라 그동안 손대기 어렵다고 여겨져 왔던 의무지출에도 과감하게 10%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동시에 고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의 단계적 축소, 교육교부금 구조개편 방안을 지침에 명시함으로써 그간 관행적으로 유지되어 온 재정 지원 체계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이는 단순한 예산 삭감이 아니다. 한국 공공부문은 오랜 세월 동안 한 번 만들어진 사업이 삭제되지 않고 관성적으로 연장되는 ‘좀비 사업’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필요성이 사라진 보조금, 수혜 대상이 달라진 지원금,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이전지출이 매년 예산서를 채워왔다. 이번 지출 구조조정은 이러한 공공부문의 관성에 강력한 외부 충격을 가하는 시도다. 어떤 사업이 살아남고, 어떤 사업이 사라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재정당국과 해당 부처만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과정의 시작이다.

 

 

시민사회 참여: 개혁의 정당성을 높이는 장치

 

이번 편성지침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지출 구조조정 과정에 시민사회 참여를 제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출 감축 추진 과정에서 TF를 구성하고 시민 의견 수렴 절차를 운영하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국민 참여 채널도 마련하도록 했다. 그동안 예산이 기획재정부와 각 부처의 협의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비판을 고려할 때, 이는 중요한 변화다.

 

시민사회 참여는 단순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넘어, 어떤 지출이 실제로 필요한지, 어떤 사업이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에 기반해 유지되어 왔는지를 가려내는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재정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시민이 예산의 사용처를 감시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은 재정 혁신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변화다. 참여가 보장될 때 개혁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제도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재정 혁신이 곧 국가 시스템의 전환

 

이번 지침이 제시하는 투자 방향인 AX(AI 전환)·GX(녹색 전환), 연구개발 혁신, 5극 3특 지역성장 거점 육성, 저출생 대응, ODA 확대 등은 단순한 예산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경제 시스템과 사회 구조, 그리고 국제적 역할을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선택이다.

 

재정은 국가 의지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다. 어디에 돈을 쓰느냐는 어디로 나라가 가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지방 주도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수도권 중심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AI G3 도약을 위해 연구개발 체계를 전면 재편하겠다는 것은 기존 과학기술 지원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의미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2035 NDC 달성에 재정 자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에너지와 산업 구조 전환을 재정이 견인하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2027년 예산안 편성지침은 단순한 ‘내년도 예산 가이드라인’을 넘어, 공공부문의 관성을 흔들고 시민이 재정의 주체로 참여하며 재정이 국가 시스템 전환의 중심 동력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종합적인 재정 혁신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각 부처와 시민사회, 그리고 국회가 함께 이행 과정을 점검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재정 혁신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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