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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로 가지 않으면 출산율은 돌아오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5명에서 2025년 0.80명으로 상승했다. 2년 연속 반등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돌아왔다”는 희망적인 표현도 등장했다. 정부 역시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재정과 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숫자를 성급하게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번 반등의 상당 부분은 정책의 결과라기보다 인구 구조가 만들어낸 통계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른바 ‘에코붐 세대’가 현재 30대 초반이라는 핵심 출산 연령대에 진입했다. 동시에 코로나19 시기에 억눌렸던 결혼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면서 혼인 건수도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출산율 상승의 배경에는 이런 인구·사회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즉 지금 나타난 반등은 정책이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라기보다 인구 구조가 만들어낸 잠깐의 숨 고르기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출생아 수는 연간 70만 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출생아 수는 4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현재 30대 초반 인구가 지나가면 그 뒤를 잇는 세대는 훨씬 작다. 지금의 반등이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면 몇 년 뒤 다시 출산율 하락이 나타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따라서 지금은 숫자의 반등을 축하할 때가 아니라 구조를 바꿀 마지막 시간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280조 원을 쓰고도 출산율은 떨어졌다.
대한민국은 지난 20년 동안 저출산 대응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2006년 이후 저출산 정책에 투입된 예산은 누적 약 280조 원에 이른다. OECD 국가와 비교해도 매우 큰 규모다. 그러나 같은 기간 출산율은 오히려 급격히 하락했다. 2000년대 초반 1.3명 수준이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까지 떨어졌다. 재정 투입 규모만 보면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였지만 결과는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왜 280조 원을 쓰고도 출산율은 계속 하락했을까? 많은 정책이 출산 이후 단계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출산장려금, 양육수당, 보육시설 확대, 아동수당 등이다.
이러한 정책은 분명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출산 결정은 훨씬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결혼, 주거, 일자리, 경력 안정성 같은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최근 출산율 하락의 절반 이상은 결혼 감소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 줄어든 이유는 문화 변화만이 아니다. 경제 구조의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청년의 주거비 부담은 크게 증가했다. 노동시장 안정성은 낮아졌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는 아이를 낳게 하는 정책은 만들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삶을 만드는 정책은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저출산 정책은 결국 복지국가 정책이다
저출산 문제를 단순히 인구 정책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산은 개인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내리는 가장 큰 결정 중 하나다. 그 결정은 오늘의 삶이 안정적이고 내일의 삶이 예측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
안정적인 일자리, 예측 가능한 소득, 감당 가능한 주거 비용, 경력 단절 없는 노동시장, 신뢰할 수 있는 돌봄 시스템. 이러한 조건이 갖춰질 때 출산은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
북유럽 국가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출산율을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현금 지원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남녀 모두에게 보장된 육아휴직, 공공 중심의 보육 시스템, 경력 단절이 거의 없는 노동시장, 성평등한 직장 문화가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출산율은 단순한 인구 통계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신뢰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정책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초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첫째, 청년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수도권 주거비는 이미 청년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산장려금 몇백만 원은 결정적인 유인이 되기 어렵다. 청년 공공주택 공급 확대, 장기 공공임대주택 확대, 주거비 부담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노동시장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이 확대되면서 청년층의 고용 안정성은 크게 낮아졌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줄이고 안정적인 노동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 단절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남성 육아휴직 확대, 유연근무제 확산, 돌봄 분담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넷째, 돌봄을 공공 인프라로 전환해야 한다. 보육과 돌봄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다.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와 초등 돌봄 확대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사회 투자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현재 나타난 출산율 반등은 길어야 몇 년 정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간 동안 구조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후 출산율은 다시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출산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출산율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년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고, 여성의 경력이 보호되며,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중받고, 돌봄이 사회 인프라로 작동하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복지국가다. 그리고 바로 그 복지국가가 아이들이 태어나고 싶어 하는 나라일 것이다.
지금 나타난 작은 반등은 성과가 아니라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 짧은 시간을 구조 개혁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통계적 착시로 지나가게 될지는 지금 우리의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 ⓒ 사회적경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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