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근로소득세 '폭탄'이라는 착시, 그 너머의 구조적 결함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6/03/07 [13:12]

[정창수 칼럼] 근로소득세 '폭탄'이라는 착시, 그 너머의 구조적 결함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 입력 : 2026/03/07 [13:12]

반복되는 세수 논란, 숫자가 가린 본질

 

매년 초 세수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반복되는 서사가 있다. "근로소득세 역대 최대", "직장인 유리 지갑만 털린다"는 식의 감성적 접근이다. 지난해 근로소득세 수입이 68조 4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7조 4천억 원 증가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어김없이 '노동자 소외론'이 비등하고 있다. 10년 사이 국세 중 근로소득세 비중이 12%에서 18%로 급증했다는 수치는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 보인다.

 

▲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 

 

하지만 재정의 관점에서 보면, 세수 총액의 증가가 곧 개별 납세자의 과도한 부담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숫자가 커졌다는 사실과 실제 부담의 증가는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착시의 구조: 매크로 지표와 실효세율의 괴리

 

근로소득세 총액 증가는 거시경제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취업자 수 증가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용근로자 비중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고, 명목임금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경기 변동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법인세나 양도소득세와 달리, 근로소득세는 고용 유지와 임금 상승에 따라 비교적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조세 형평성을 가늠하는 척도는 총액이 아닌 실효세율(Effective Tax Rate) 이다.

OECD의 '임금 과세(Taxing Wages)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임금 수준 무자녀 독신 노동자의 실효세율은 6.9%에 불과하다. 이는 OECD 38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다. 호주(25.3%), 미국(15.5%), 프랑스(16.7%) 등 주요국은 물론 OECD 평균(15.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느끼는 '세금 폭탄'의 실체는 사실 세수 비중 변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만들어낸 착시일 뿐이다.

 

 

비정상적인 면세자 비율과 조세 형평성의 훼손

 

이토록 낮은 실효세율의 배경에는 수십 년간 누적된 과도한 공제·감면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기준 임금노동자의 32.5%가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면세자'이다. 일본(15.1%)이나 호주(15.5%)와 비교하면 극단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구조는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유발한다.

첫째, 세원 기반이 취약해집니다. 조세 부담이 상위 소득 구간에 집중되면서 일부 계층의 소득 변화가 곧 세수 변동으로 이어지는 불안정한 구조가 형성된다.

 

둘째, 재정에 대한 시민적 감각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세금을 내는 경험이 줄어들수록 재정 지출에 대한 관심과 감시 역시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의 모순: 저부담-고복지라는 '지속 불가능한 환상'

 

우리는 여기서 더 근본적인 사회적 담론을 마주해야 한다. 흔히 북유럽 모델로 대변되는 '고부담-고복지'가 당장의 목표가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 재정 운영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려면 '저부담-저복지' 모델이라도 확립되어야 한다. 즉, 세금을 적게 내는 만큼 공공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민간 자율에 맡기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는 '저부담'의 구조 위에서 '중·고복지'의 혜택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 돌봄, 교육 등 전방위적인 국가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그 비용을 지불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에 의존해 온 결과, 2029년 국가채무 비율은 58%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담과 복지의 수준이 맞지 않는 이 '재정적 불일치'는 결국 미래 세대의 자산을 잠식하는 행위다.

 

 

과세 기반 확충과 조세 지출의 정상화

 

진정한 재정 개혁은 세율 인상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지기 전, '과세 기반의 정상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면세자 구간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복지 성격의 조세 공제를 보다 투명한 예산 지출로 전환하는 방식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관행적으로 유지되어 온 비과세·감면 제도 역시 ‘보이지 않는 보조금’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일반 예산과 동일한 기준으로 효과를 검증하고, 실효성이 낮은 항목은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

 

 

착시를 걷어내고 정직한 숫자를 마주할 때

 

실효세율 6.9%는 객관적으로 매우 낮은 수치다. 우리가 ‘많이 내고 있다’는 착시에 빠져 있는 동안, 국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근로소득세 총액 증가를 비난하기에 앞서, 왜 노동자의 3분의 1이 과세권 밖에 머물러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복지의 수준에 걸맞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착시를 걷어내는 것, 그것이 건강한 재정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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