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인터넷언론인연대 인디포커스 김은해 기자 편집 조응태 기자] 표구공 제1242호 정찬정 문화재수리기능자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보물급 문화재가 수없이 많다고 한다.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은 종류도 많고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해 전문가가 아니면 용어 자체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훼손된 배첩 문화재는 어떻게 다시 복원되는지 정찬정 장인의 역사 복원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70년대 서울 인사동 표구사에서 배첩의 세계에 들어선 후 풀 쑤고 틀 나르며 표구사에서 숙식, 80년대 차가방을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됐다. 90년대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을 취득하고, 2015년 장황문화재연구소를 설립해 과학적 분석을 통한 문화재 수리·복원에 전념하면서 오랜 경험으로 기술적인 신뢰를 얻고 후대에 전승하고자 보고서를 남기고 있다.

 

▲ 정찬정 배첩장(사진-인터넷언론인연대)

 

= 기술을 배우게 되다

 

정찬정 장인은 10대의 어린 시절에 서울로 상경하여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어린나이에 일할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서울 인사동 표구사에서 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손기술을 배우게 됐다. 그 당시에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배웠던 기술은 현재 생계를 넘어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전문성을 갖추게 됐다.

 

1970년대, 서울 인사동은 시서화가 성행했기 때문에 더불어 시서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표구 또한 성행했다. 어느 인사동 표구사에 들어가 몇 년을 일했지만 기술을 배우기는 커녕 허드렛일만 하며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제대로는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 숙식이 해결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때였지만 너무 힘들어 그곳을 나오게 됐다.

 

1980년대, 동종업계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형 밑에서 본격적인 기술을 배우게 됐고 몇 년 뒤, 형이 기관에 취직하게 되면서 그 가게를 인수하게 됐다. 그 당시에 주로 거래하던 대상층은 이대, 홍대, 상명여대, 동덕여대, 경원대 등 동양화와 관련된 전공 학생들과 전시에 참가하는 화가들이었다. 그들의 전시 작품을 꾸며주는 일과 더불어 손상된 옛 회화 작품을 들고 오는 손님들도 꽤 많았다.

 

 

= 전문인으로 거듭나다

 

1990년대, 시대가 변하면서 회화의 표현 방식도 변했다. 서예, 동양화 등이 주를 이뤘던 시기와 달리 추상적 표현을 하는 회화가 성행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회화에 쓰이는 재료의 성행 또한 변화하게 됐다.

 

“동양화는 얇은 종이를 바탕으로 배접 등의 처리가 이루어지는 반면, 추상화 같은 회화는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다든가 해서 두꺼운 장지나 삼합지를 써요. 동양화는 창살로 된 나무틀을 종이로 보강해서 쓴다면 추상화는 베니어판(나무 합판) 등 다양한 재료를 쓰거든요. 근데 두꺼운 종이나 합판은 표구사에서 안 쓰고 화방에서 써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수요가 옮겨가게 줄어들게 되었죠”

 

수요가 굉장했던 과거와는 달리 갈수록 줄어들었고, 인사동의 많은 표구사가 떠나게 되거나 문화재 수리 쪽에 손을 뻗어 업자에게 하청을 받아 일을 하기도 했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대량으로 물건이 제작되는 등 전통이 점점 사라져 갔다.

 

“배첩(표구) 세계가 불이 꺼져가고 있는 반면, 문화재 보존, 복원 등이 점점 불씨를 키워가고 있었어요. 반면에 종이에 관련된 지류문화재 보존처리 사업 발주가 조금씩 늘어났죠. 그러면서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업체를 차려서 이름만 두고 표구사에 하청을 주고 서로 이득을 취한 거죠. 저도 그런 것에 위기를 느끼고 문화재수리자격증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지요”

 

그 시기에 정장인은 학예사와 인연이 닿았고, 문화재보존처리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기반을 다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고민 끝에 정장인은 가게를 운영하며 보존처리 사업을 병행하게 된다. 단지 기술만 쌓아왔던 30년의 세월이었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지키고 싶은 마음 또한 더욱 커졌다. 결국 문화재수리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

 

그렇게 나름의 준비를 해오다가 인사동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2015년 10월 장황문화재연구소를 설립하고 인사동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국가지정문화재, 도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등의 전적, 고문서, 액자, 병풍, 족자 등의 보존처리 및 장황을 하고 점점 명성을 알리고 있다. 전문인력을 통한 자문회의, 과학적 분석을 통한 재료 사용, 많은 경험을 통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통해 지류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보존처리가 필요해 나온 유물들이 대부분 조선시대 유물입니다. 일부가 불탄 것도 있고, 찢긴 것도 있고, 얼룩이나 오염된 부분도 있는 등 손상된 유물을 보면 고치고 싶어져요. 그래서 최대한 유사한 재료를 사용하고, 그 유물만의 방식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문화재에 담긴 선조들의 피땀과 지혜를 지켜 후대로 전한다는 것과 제대로 처리했다는 자부심에 보람을 느껴요”

 

▲ 정찬정 배첩장(사진-인터넷언론인연대)

 

= 계승자 양성에도 힘쓰는 중

 

일과 더불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정교수는 전통 기술을 전하고자 하며,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매주 실습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의 것에 걸맞은 우리나라 전통의 방식이 지켜지길 원하며, 동시에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해지길 원했다. 또한, 오로지 기술로만 전해져 내려온 전통 방식을 학생들을 통해 기록화 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사실 ‘표구’라는 용어는 일본식 표현이에요. 저는 ‘배첩’이란 우리나라식 표현을 쓰고 있죠. 일제감점기를 거치면서 도구나 동작의 표현 하나하나에 일본식 표현이 굉장히 많고, 실제로 일본 방식의 처리 과정이나 장황 방식이 섞인 것이 몸에 배어있는 표구사도 꽤 많아요. 유물을 봐도 사용된 비단의 색상이나 문양 등 일본식의 화려함이 섞이게 되는 시기도 있더라고요. 물론 그 과정속에서 우리 것을 잃지 않고 같이 융합된 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 선조들은 우리 기술을 지켰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만의 전통을 가진 수많은 옛 유물들을 기준 삼아 후대에도 계속 지켜졌으면 한다”

 

= 보존처리 작업을 하면서 속상했던 때

 

저희는 유물이 처음 만들어진 당시의 원형 자체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손상된 것을 처리할 때도 있지만 손상된 유물이 도중에 기술력이 부족한 누군가를 거쳐 잘못된 수리가 되었거나 그로 인해 손상이 더 악화된 유물을 처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처리할 때면 속상하고 일하는 것도 힘이 배로 들고 더 조심스럽습니다. 그런 경우는 수리 흔적이 없이 손상된 유물이 저한테 처음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재 보존처리 사업을 가져올 때 수의계약도 있겠지만 보통 문화재청에서 입찰을 해서 업체가 선정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자격증만 갖춰져 있으면 입찰에 응할 수 있기에 일을 시도하다가 기술력 부족으로 그런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 기술력을 가진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일본은 단급, 상급 이렇게 나누어 문화재 수리자격을 꼼꼼하게 체계를 두고 협회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 진행하는데 우리나라는 기술자 자격만 가지고 있으면 경력을 보지 않고 수리업체를 차릴 수 있다 보니 이런 사고가 생기는 것 같다. 작품을 보면 손상시킨 부분은 한눈에 보여 문화재는 정말 재탄생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맡겨져서 혼을 담은 작업을 통해 역사에 남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현재 보존처리하고 있는 유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등급을 매겼을 때 가장 귀한 것을 말씀드리면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국보 승정원일기이다. 수백 년을 거쳐 만들어진 이 유물은 오래된 만큼 얼룩, 충해, 열화가 굉장히 심하고, 수리 복원을 위해 규장각 내의 보존처리실로 출장을 나가고 있다. 그래도 그 당시 귀한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온전한 장도 많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보존처리 내용은 책을 해체하고 내지와 표지 모두 건식 및 습식 클리닝을 거친다. 결손부를 유사 재료를 제작하여 메움·보강하고, 압축·건조해 평평하게 합니다. 지심을 이용해 내지를 묶고, 앞뒤에 표지를 부착하여 장정 끈으로 묶어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 대를 이은 배첩 함께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지금 자녀와 일을 함께하고 있어 가장 행복하고 좋습니다. 오로지 손기술만 가지고 일을 해온 정장인은 자녀가 학문적인 것을 배우면서, 실무적인 일과 행정적인 일을 모두 도와주고 있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자녀들이 몇 명의 제자들과 같이 팀을 꾸려서 같이 해나가고 있는데 문화재 수리업체를 차리고 나니까 이것저것 서류를 만들거나 보고서를 쓰거나 할 때는 어려움이 있어 처음에는 도와주는 식으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됐다.

 

이 일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자식에게 강요할 부분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전통을 지켜서 후대에 전승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갖고 노력하려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 끝으로 정부나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특수하고 좁은 분야다 보니 관련된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는 배첩이라든지 문화재보존이 생소하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기록화가 잘 이루어지다 보니 학생들이 공부하기도 좋아지고 관련 전공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어 후대로 갈수록 접근성이 쉬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문화재 수리를 배우러 오는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친구들을 보면서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몇 해 전만 해도 후계자라든지 제자가 밑으로 들어올 일이 없었는데 다시 부활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다.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이후로 맥이 끊겼다고 생각했는데, 한 10년 전부터 조금씩 활성화가 되면서 지금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지원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이 나아질 것 같다. 우리나라 문화재가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올바르게 처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 바라는 것은 문화재가 제대로 처리됐으면 하는 측면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보존처리라는 것이 학문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 수년간 몸으로 터득해도 못하는 사람은 못한다. 이론보다 기술적인 측면이 더 큰 업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나 대표 자리에 앉아, 실무 경험이 없이 자격증만 가진 사람을 몇 명 섭외해서 수리업을 등록하고 업체를 차릴 수가 있는 실정상, 발주처와 계약을 하고 하청을 줘서 기술이 미숙한 사람들이 처리해서 유물을 망가뜨리는 일이 없어야 되는데 이 바닥이 좁다 보니까 그런 경로로 잘못 처리됐다는 얘기가 자꾸 들려온다. 입찰시스템에서 그런 부분을 좀 꼼꼼하게 따져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그런 곳에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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